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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이 촛불이 폭풍에 꺼지지 않기를

아이티에 있는 우리 딸 위슬린은 대학 1학년에 다닌다. 15년 전 아이티 대지진 직후 여자아이들만 있는 고아원인 하우스 오브 홉(House of Hope)에서 다섯 살의 위슬린을 만나서 입양을 계획했다가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이후 아이를 고아원에 둔 채로 딸 삼아 뒷바라지하며 키웠다. 사춘기를 심하게 보내기도 했고,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대학 입학에 꼭 필요한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에 떨어져서 상심하기도 했다. 갱들이 길을 비운 틈을 타 오랜만에 만난 아이는 엄마인 내 아내를 안고 펑펑 울더니 두 번째 시험을 봐서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고 수도 포토프린스따바에 있는 아리스티드 대학교 간호학부에 진학했다.   아이티를 생각하면, 아이가 이만큼 자란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아이가 자란 하우스 오브 홉은 고아원 중에서는 가장 윤택하게 운영이 되는 곳이어서, 아이들은 밥을 자신이 먹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내가 아는 한 마음껏 밥을 먹을 수 있는 고아원은 이곳이 유일하다). 아이마다 침대가 하나씩 배정되고, 하루에 한 번씩 샤워할 수 있는 흔치 않은 환경을 갖춘 곳이다.   위슬린은 아주 어려서는 비행기 승무원이 되고 싶다고도 했고, 언젠가는 뷰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현실은 어려웠지만 아이는 미래를 꿈꾸며 나이가 들더니 간호사가 되겠다고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무엇이든지 라이센스가 있는 직업이 좋다고 늘 강조하던 우리 부부의 주장이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아이는 대학 진학을 통해 꿈에 한 발 더 다가섰다.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고, 간호학과 학생 유니폼과 학교 다닐 준비를 다 했는데, 학교 다니는 길이 걱정이었다. 미국대사관 근처에 있는 학교는 갱단이 활개를 치기 전에도 늘 폭력시위가 난무하는 지역이었다. 고아원에서 2.5km 되는 가까운 거리에 학교가 있지만 통학하는 길은 늘 아슬아슬하다. 학교는 다행히 지난 가을 며칠씩 문을 닫은 외에는 계속 수업하고 있는데 우리는 매일 아이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자주 왓츠앱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위슬린은,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처음으로 정식 대학에 보낸 아이다. 그동안 고아원에서 자라나 간호학원이나 기술학교 같은 곳을 다닌 아이들은 있었지만,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고 4년제 대학에 처음으로 진학한 것이다. 지금 아이티 현실 가운데 대학을 졸업하고 안 하고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아이들이 남들과 다름없는 교육을 받는 것이 목표이기도 한 우리에게는 그것이 희망이고 꿈이다. 그래서 올해에는 적어도 두 명 이상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고 질문했다. 나라 전체가 폭력적이고 낙심천만인 상황에서도 아이티 고아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저마다 가슴에 촛불 하나씩 켜고 꿈을 꾼다. 한편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는 폭력적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우리도 그리고 있다. 자라서 무엇인가 되고 싶은 꿈을 품은 촛불을 우리는 폭풍 속 같은 세상에서도 지켜내고 싶다. 이토록 암흑 같은 세상이 거친 숨을 몰아쉴 때도 믿음 안에서 작은 촛불 하나를 애써 지키며 함께 꿈꾸려고 우리는 고아들의 손을 잡고 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촛불 폭풍 대학 입학시험 아리스티드 대학교 아이티 고아원

2025-01-23

[삶과 믿음] 가장 좋은 것으로

오래전에 아이티 고아원에 스피커가 있으면 좋겠다는 소식을 SNS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보고 아이티에서 사역하는 어느 선교사가 글을 올렸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데, 그냥 노래하고 말하면 되지 무슨 스피커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충전해서 사용하는 포터블 스피커를 열 개 고아원에 공급했고, 여러 해 동안 고아원에서는 그 스피커를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우리가 고아원 아이들에게 닭 다리 얹은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인다고 했을 때 그 선교사가 자기는 밥을 직접 해서 먹인다며, 그게 다 밥 장사하는 사람들 배만 불리는 것이라고 했다. 왜 고아원 아이들은 닭 다리 얹은 도시락을 먹으면 안 되는지, 그걸로 돈을 번들 얼마나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인지, 그 밥장사는 돈 벌면 안 되는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고, 요즘도 우리는 아이들을 센터로 초청해서 닭 다리 얹은 도시락을 주문해서 아이들과 나누고 있다. 그 선교사는 우리가 빈곤 포르노에 의지해 후원자를 선동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고아들을 향한 동정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으로 좋은 것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지금은 운송이 어려워져 중단하고 있지만, 몇 년 동안 고아원에 새 옷을 일일이 세트로 포장해서 나이별 성별을 구분하여 보내주는 분도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헌 옷도 보냈는데 옷을 모을 때, 그 옷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잘 개서 가져다주는 분들이 많았다. 어떤 후원자는 자기 아이와 똑같이 자기가 후원하는 아이의 학용품과 옷가지를 챙기기도 한다. 우리가 쓰고 누리는 것을 우리와 똑같이 아이티 고아들이 다 누릴 수는 없겠지만, 아주 작은 일부라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아이티니까, 고아니까, 적당히 해주고, 아무거나 주어도 된다는 발상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우리도 실수했다. 무엇이든지 귀한 곳이니, 뭘 줘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질보다 양이 우선이어서 특별히 좋은 것보다는 무엇이든 많이 나누려고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티 고아들도 좋은 것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식량을 공급할 때 쌀과 식용유만 지원하지 않는다. 콩과 생선 통조림도 공급하고, 설탕과 화장실 휴지와 빨랫비누도 공급한다.   아이티는 지금 전쟁터 같은 처지이다. 10월 들어 많은 마을이 갱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수십만 명이 집을 잃고 고향을 떠나고 있다. 경찰서가 공격받고, 경찰들이 죽고 다치는 일이 다반사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낮이고 밤이고 총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무기력한 마음으로 아이티의 평화를 위해, 고아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여전히 고아들에게 전할 좋은 것을 찾고 있다. 공포와 혼돈의 땅이 되어 바깥출입조차 불안하지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라고, 잘 먹고 잘 배우자고 등 두드려주고 싶다.   물론 우리에게는 자원의 한계라는 형편이 있으니, 그 형편 안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나누고 섬기려 애쓰고 있다. 예수님을 대접하는 심정으로 설렁탕을 끓인다는 어느 식당 주인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받으시고 잘했다고 애썼다고 고마워하실 만한 먹거리, 학용품, 의복 등을 고민한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보면, 고아도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받아 마땅하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아이티 고아원 동안 고아원 고아원 아이들

2024-10-24

[삶과 믿음] 끼니

몇 주 전, 경상북도 구미시의 한 식당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 라면 무료”라는 내용으로 붙은 안내문이 인터넷에서 화제였다. 폐지를 주워 용돈을 버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라면을 무료로 끓여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노령 인구의 삶의 질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라면 한 그릇 따뜻하게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많은 네티즌이 감동의 댓글을 남겼다.   세상에는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식사하셨느냐’는 물음이 가장 대중적인 인사말이었던 적이 불과 수십 년 전이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이제는 경제적으로 풍요한 나라에서조차 끼니를 해결할 수 없어서 눈물 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세계적으로 보면, 빈곤의 아픔 속에 끼니를 체념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 하는 사람을 찾기보다 훨씬 쉽다. 세상이 발전하고, 점점 더 살만해진다고 해도 빈곤으로 끼니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아이티는 서반구에서 가장 빈곤율이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1100만 명이 넘는 인구의 절반은 기아로 허덕이고, 어린이 수십만 명이 영양실조의 위험에 처해 있다. 아이티에는 정부가 통계를 내지 못할 만큼 많은 고아가 있다. 하루 한 끼를 장담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고아로 산다는 것은 끼니를 채울 수 없는 삶의 바닥 중 가장 아래 어디쯤에 아이들이 놓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티에서 고아의 삶이란 굶는 일이 일상이란 뜻이다.   아이티 고아원에서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단어가 바로 ‘끼니’이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중략)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 새 없이 밀어닥쳤다.” 끼니 앞에서 무기력하면 삶은 가장 비참해진다. 먹지 못한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할 수 없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하루 한 끼는 쌀밥을 먹을 수 있게 하자고 시작한 우리의 목표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끼니 앞에 때로 모래성처럼 무력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라고, 숫자는 늘어나는데 후원은 한정되거나 오히려 줄어든다. 공급되는 식량을 나누다 보면 밥이 옥수수죽이 되고, 죽은 물이 되기도 한다. 하루 두 끼 식사 중에 아침에 죽 먹고, 저녁에 물 마시고 잠들어야 하는 절대 빈곤 가운데 때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끼니는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공급하는 우리 모두를 두렵게 한다.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라면을 무료로 대접하겠다는 경북 구미시의 식당 주인은, “배고프면 먹어야 하지 않나. 배고프면 눈물 나는 게 사람인데 밥이라도 한 끼 먹어야 살아갈 수 있지 않냐”고 했다. 아이티 아이들은 배고파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울어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배고픔은 아이들에게는 눈물조차 메마른 두려움이다. 사람은 끼니때가 되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먹어야 한다. 아이티에서 우리는 쉬지 않고 밀어닥치는 끼니의 두려움을 이기는 꿈을 꾼다. 하루 두 끼 끼니를 거르지 않고 삶이 행복해지는 꿈을 계속 꾸고 있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끼니 아이티 고아원 아이티 아이들 경상북도 구미시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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